그는 망망대해 같은 심연을 부유하고 있었다.
‘…….’
이곳에서는 감각이 전부 사라져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닿을 수도 없었다. 시간의 흐름조차 알지 못했다.
덧없는 시간을 유수히 흘려보내며, 몸을 말아 웅크리고 스스로의 존재마저 천천히 잊어 갈 뿐이었다.
‘내가…… 누구였더라?’
한때는 그도 이 심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던 적이 있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도 잊었다. 다만 스스로가 많이 지쳤다는 것은 기억했다.
‘나는 할 만큼 했어. 최선을 다했어.’
비록 그 최선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치열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으며,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지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웅크린 몸을 더욱 작게 말았다.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조금은 포근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젠…… 쉬고 싶어.’
그는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리하여 비로소 완벽한 안식이 찾아오기를.
-선생님!
순간 아득하게 먼 곳에서 들려오는 환청에 그가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몸을 더 웅크리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외면하려 했다.
-당신은 우리의 질문에…….
-혼자 지옥으로 도망칠 생각 따윈…….
-죽더라도 남의 손에는…….
온갖 환청들이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약간의 빛이 움트는 느낌에 그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여전히 심연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결국 절망한 그가 다시 몸을 웅크리려 할 때.
-애송아.
몹시 그리운 목소리와 함께, 망망대해 같은 심연에 거대한 울림이 번졌다.
쿠우웅-!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그리운 목소리들과 함께, 그가 갇힌 심연에 거대한 울림이 전해졌다.
-제자야.
-오랜만이구나.
-보고 싶었단다.
망망대해 같았던 심연에 거대한 진동이 연달아 퍼졌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심연의 한 부분이 롤토토 희미하게 틈이 비쳤다. 한 줄기의 빛이었다.
“……사부들?”
그는 자신이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희미하지만 따뜻한 빛을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곳은 망망대해 같은 심연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는 웅크린 채 모든 것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빛을 향해 헤엄쳤다.
‘나는…….’
마치 그것이 자신의 본능이라는 듯, 심연을 거슬러 빛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곳에 그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 * *